강석호(1971-2021)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쿤스트아카데미 뒤셀도르프(Kunstakademie Düsseldorf)의 얀 디베츠(Jan Dibbets)에게 회화를 수학하였다. 2000년 스위스 바젤의 UBS 아트 어워드를 수상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4년 석남미술문화재단으로부터 석남미술상을 수상했고,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작가로 선정되었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인사미술공간, 금호미술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등에서 16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2021년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였다. 진지한 화가일 뿐 아니라 디자인 가구 수집가이자 전시기획자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던 그는 2008년 금호미술관의 《유토피아, 이상에서 현실로》와 2019년 아트스페이스3의 《이것을 보는 사람도 그것을 생각한다》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일상과 예술을 따로 떼어 놓지 않았던 그는 회화, 독서, 음악감상, 산행과 낚시를 주제로 동료 작가들과 함께 교류하는 모임들을 이끌기도 하였다. 2018년에서 2021년까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작고 1주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첫 회고전, 《강석호: 3분의 행복》(2022-2023)이 개최되었다.
1996년부터 시작된 강석호의 초기 작업들은, 직접 촬영한 일상적인 사진에서 인물의 모습을 1cm² 남짓으로 잘라내고 그것을 크게 확대하여 그린 회화이다. 복장의 질감과 색감표현에 집중한 이 시리즈들은 ‘대상(소재)으로부터 멀어지고 캔버스 표면에 가까워지기’라는 강석호의 독특한 실험이었다. 묽은 물감을 묻힌 붓을 캔버스에 때리고 두드려 층층이 쌓아 올리는 표현 방법과, 구상회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연관된 내러티브를 허락하지 않고 추상성을 향해 가는 그의 작업은 회화적 행위와 사유를 하나로 단단히 묶는다. 이후 2005년 한국으로 귀국 후 처음으로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는 ‘초록색 체크무늬의 재킷을 입은 이의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뒷 모습’을 반복하여 그린 40여점의 회화를 발표하였다.
2008년 11월 브레인 팩토리의 개인전에서 발표한 '제스쳐' 시리즈는 TV 프로그램 《100분 토론》이나 시사주간지에서 발췌한 인물을 흑백으로만 묘사하면서 소재의 변화를 주었다. 미디어 매체에서 소비되는 정치인, 스포츠 선수 등 알려진 인물들의 제스처는 이미지의 서사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해당 전시는 18일의 전시 기간 동안, 하루에 한 점씩만 전시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개최되었고, 18일 동안 매일 전시장을 방문한 관객만이 시리즈 전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제스처 시리즈 발표 이후, 강석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2008)에 초청되었다. 이 외에도 두 사람의 눈을 클로즈업하여 한 화면에 그린 ‘커플’ 시리즈와 피부색과 질감에 집중한 ‘누드’ 시리즈, 무한한 시공간에 대한 상상을 정물화로 풀어낸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강석호는 가장 전통적인 ‘회화’에 대한 헌정을 이어 나갔다.
전시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던 강석호는 특히, '한국 회화가들의 작품 속에는 독특한 한국적 특징이 존재하는가'에 관한 주제를 탐구하였다. 그가 기획한 대표적인 회화 전시로는 《한국의 그림-사진에 대하여》(2011), 《한국의 그림-매너에 관하여》(2012)가 있다. 또한 강석호는 종종 자신의 개인전이나, 그가 기획한 전시의 서문을 그가 쓴 수필로 대신하였다. 그의 글은 제도권 미술이 기대하는 비평 언어나 구조와는 달리, 일상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에 가깝다.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미적 특질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작가로서의 일상을 담은 그의 에세이 역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바탕이 된다. 2023년 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그의 첫 회고전 《강석호: 3분의 행복》을 맞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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