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ng Seoyoung: With no Head nor Tail
정서영: 머리도 꼬리도 없이
티나킴 갤러리는 정서영(서울, b.1964)의 개인전 《머리도 꼬리도 없이/With no Head nor Tail》을 3월 21일부터 4월 20일까지 개최한다.
정서영은 1994년 첫 개인전, 《수 십 개의 그림과 몇 개의 조각으로 만든 일》 (HP Schuster Gallery, 1994)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1996년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비현실적인 것에서 일상적인 것,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 사이의 왕복 운동"[1]이라고 언급한다. 조각의 전통적인 정의를 우회하고 있는 이 설명은, 우리가 인식하고 구분해 왔던 관념의 사이에 있는 어떤 ‘공백’에서 조각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30년 간 정서영이 거쳐온 재료와 형태를 중심에 두고, 조각의 범주 밖에 있던 ‘참고 가능한 모든 조건’[2]으로 부터 조각이라는 매체를 재고한 전환기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머리도 꼬리도 없이》에서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나 일상의 보편적인 사물을 등장시키고 순수한 미적 자율성을 실험한 1990년대 초기작업과 언어와 그림을 통해 인식의 사각지대를 연결하는 드로잉이 소개된다. 또한 장판, 플라스틱, 합판, 인조 식물, 가구 그리고 오래된 글씨체와 같이 사회적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형태의 사물에서 나아가 브론즈, 세라믹 등 질료들의 세밀한 감각을 활용해 예민하게 포착한 ‘조각적 순간’에 대한 신작들을 전시한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들어간 입구에서 나오는 출구를 찾듯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두 점을 연결해보다가 우리는 묻는다. 머리와 꼬리는 원래 어디에 붙어 있었을까? 꼬리가 붙어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어딘 가에 붙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중요한 것일까? 정황과 맥락이 해체된 이 의아한 글귀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상황에 집중하고 떠오르는 장면을 연상해보는 것이다. 그가 선택해 온 모티브 중 다수는 유령, 파도, 불과 같이 추상적인 관념과 일시적인 형상이 만나는 순간들이다. “머리도 꼬리도 없이”는 어쩌면 언어가 되기 어려운 유령의 신체를 다시 유머러스한 제목으로 인도하고 있다.
〈Road〉와 〈Sink〉는 일상적인 사물이 등장하는 정서영의 대표작이다. 1995년 이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Road〉(1993)는 징엔(Singen, Germany)의 버려진 변전소에서 있었던 그룹전[3]을 통해 최초로 발표되었다. 1912년 건설 후 확장과 해체를 거듭하다 관리조차 쉽지 않았던 그 곳에, 정서영은 바퀴 달린 플라스틱 양동이 조각을 전시한다. 양동이 안의 나무공에는 엇갈려 돌아 나가는 도로 들이 기호처럼 그려졌다. ‘길’은 바퀴, 동그란 나무공의 형태가 암시하는 연속적인 시공간과 한 덩어리가 되고 양동이는 이동하는 이 모든 것들의 컨테이너가 된다. 한국의 주거환경을 소비재로써 축약해 놓은 모델하우스에서 열린 개인전, 《사과 vs. 바나나》에서는 〈싱크대〉(2011)가 전시되었다. 모델 하우스의 가구(furniture)는 사회적 형태의 한 표본이다. 현실과 비현실 어디 즈음에 위치한 장소는 익숙하게 보아온 소비재의 형태를 재고하게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모습을 백지상태와 같이 들여다보게 한다. 이처럼 정서영의 사물은 조각을 만들어내기 위한 구실이 아니다. 여태껏 말해지지 않은, 표피적이고 고정된 대상에 대한 인식을 또다른 통로를 열어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에는 언어와 지각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근작이 소개된다. 전시장에 우뚝 서 있는, 〈깊은 바다와 두꺼운 벽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같은 일이지? 이을지〉 (2024) 에는 검은 지시문이 쓰여 있다. 이 글씨체는 한국사회의 주입식 교육 과제로써, 7-80년대의 어린 학생들의 미술시간에, 표어가 담긴 포스터를 그릴 때 종종 사용되었다. 포스터의 내용은 주로 ‘불조심’, ’자연보호’이거나 ‘반공’, ‘방첩’이었다. 가시성, 가독성이 중요하다고 배운 표어가 무색하게, 두 세번 고쳐 읽어도 의미는 넘어진다. ‘깊은 바다’와 ‘두꺼운 벽’은 ‘같은 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들여다보는’ 행위를 매개로 인식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다. “물건이 그 몸집 때문에 버거울 때는 그림이 하게 한다”는 작가의 진술과 같이, 언어의 질료성은 정서영이 말로써 취하는 일종의 추상조각이다. A4 종이 크기의 도자 판 위에 유약 펜슬로 남긴 간결한 글과 그림들은 포슬한 도자기의 질감 위에 빛난다. 자에 기대어 쓴 자음과 모음들은 형태와 소리의 흔적이 된다. “까마득한 옛날에 집 없이 돌아다닐 때, 우리는 일을 그리 많이 하지도 않았다”의 글자들은 마치 움직이고 있는 작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어떤 감각들은 시각적인 것보다 강렬하다. 〈Red〉는 뉴욕의 한 도서관(The Morgan Library)에 전시되어 있던 샤를 롯테 브론테의 드레스에 대한 작가의 생생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실존했던 인물의 옷이라고 하기엔 독특하고 낯선 크기의 사물은 대상과 조각가의 신체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이 기이한 만남은 정서영의 내면에 머물며 “내가 본 것과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그러나 동시에 의미가 없는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일견, 아무것도 아닌 듯 무덤덤하게 들리는 지난 회고전의 제목, 《오늘 본 것》(서울시립미술관, 2022)을 우리는 기억한다. 정서영이 전시의 제목에서 ‘어제’나 ‘그 때’라 말하지 않고 ‘오늘 본 것’이라고 한 것은 그의 조각이 언젠가 보았던 것을 현재 속에 재현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4] 정서영은 말한다. “지난 45억년 동안 태양은 365일 단 하루도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5] 2024년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서영의 조각은, ‘나(주체)-사물-세계’[6]에 이르는 각각의 바탕이 찰나적으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순간을 모의하고 있다.
정서영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오늘 본 것》(서울시립미술관, 2022), 《공기를 두드려서》(바라캇 컨템포러리, 2020), 《Ability vs. Invisibility》(티나킴 갤러리, 2017), 《정서영전》(시청각, 2016) 그리고 《큰 것, 작은 것, 넓적한 것의 속도》(일민 미술관, 2013) 등이 있다. 작가가 참여한 주요 단체전으로는 《송출된 과거, 유산의 극장》(인천아트플랫폼 & KADIST 샌프란시스코, 2021-22), 《하나의 사건》(서울시립미술관, 2020), 《시대를 보는 눈: 한국 근현대미술》(국립현대미술관, 2020),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국립현대미술관, 2019) 그리고 《디지털 프롬나드》(서울시립미술관, 2018) 등이 있다. 아울러 작가의 작품은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03)과 제2회, 제4회, 제8회 광주 비엔날레(1997, 2002, 2008) 전시에 초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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