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Seok Ho: Deep is the rising sun, far is the falling one
티나킴 갤러리는 강석호(Kang Seok Ho, 1971-2021)의 첫 뉴욕 개인전, ⟪Deep is the rising sun, Far is the falling one(오르는 해는 깊고 내리는 해는 멀다)⟫을 개최한다. 강석호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얀 디베츠 (Jan dibbets, b. 1941-)에게 회화를 수학하였다. 강석호는 ‘본다’ 라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행위로부터 회화의 정체성을 연구했던 화가이다. 일례로 2006년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개인전에서는 사진에서 발췌한 하나의 이미지, ‘초록색 체크무늬의 재킷을 입은 이의 뒷짐을 지고 있는 뒷 모습’을 반복하여 그린 40여점의 회화를 발표하였다. 그에게 회화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화가의 자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2000년대 초, 강석호가 귀국한 당시 한국미술의 지형은 탈 장르, 탈 매체의 경향이 강조되며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다 되는(anything goes)’ 멀티-미디어의 형식이 포스트 모던의 정치적 미학으로 확장되던 시기[1]였다. 강석호는 그러한 동시대 경향을 의식하거나 휩쓸리지 않았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범람하는 시각환경의 홍수 속에서도, 이미지와 그리는 행위 사이의 관계를 관찰하며 그 둘 사이의 거리를 넓혀가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지오르 지오네, 틴토레토, 티치아노, 조르지오 모란디와 같이 회화 거장들의 태도를 흠모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전통적인 소재인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누드 그리고 시공간에 대한 주제들을 독자적으로 탐색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석호 회화의 시작이자, 독일 유학 시기부터 2021년 작고 직전까지 지속되었던 ‘의복’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1999년 까페에서 마주 앉은 친구의 스웨터를 그린 드로잉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사진을 재단하여 특정한 앵글로 이미지를 재편하고 캔버스에 확대해 그린 것이다. 인물의 얼굴이나 주변 배경과 같이 ‘이미지의 서사성’을 만드는 특징은 모두 화면 밖으로 잘라내 버리고 옷이 가진 천의 색, 무늬, 질감 그리고 신체의 곡선을 따라 생기는 주름에 집중하며 특유의 조형성을 만들어간다. 주로 앞모습을 그리던 ‘복장’시리즈들은 2000년에 이르러 인물의 뒷모습을 다루게 된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에서, 카메라를 등지고 돌아 앉은 배우들의 모습에서 생소하고 낯선 뉘앙스와 불편함을 느꼈는데 강석호는 이것을 회화적인 구성으로 드러내거나 완화함으로써 오히려 흥미로운 대상을 찾게 되었다. 특히 곱슬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의 뒷모습에서 계곡의 폭포를 떠올렸다거나 옷감의 색과 질감을 ‘메마른 대나무 잎’처럼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 작가의 태도는, 전통적인 동양화가 풍경에 대해 가진 철학과 매우 가까이에 위치한다. 강석호는 흰 바지나 청바지를 그린 자신의 그림에 대해 백자나 바위 풍경을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2] 이러한 접근은 인물화보다 풍경화에 가까운 감각이 투영된 것이다. 또한 강석호는 회화가 이루어지는 표면이나 붓질과 같은 방법론을 매우 중시했다. 물감의 흡수성을 고려하여 특정한 린넨을 선호하였고 천의 올 위에 묽은 밀도의 물감을 여러 번 겹쳐 올리는 작법을 고안하였다. 완성된 표면에서 드러나는 붓의 쓸림은, 색이나 형태를 표현한 것 보다는 차라리 직조된 천의 마티에르에 가까워 보인다. 붓을 두드리고 색을 문지르며 뭉갠 흔적만 남은 화면에 재현이나 묘사의 자국은 없다. 사실적인 회화이면서 동시에, 빛과 공기가 흐르는 듯 투명한 미감은 강석호 특유의 소박한 서정성을 띄며 그의 작업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미가 되었다.
“그것은 단지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난, 보는 행위를 무척 좋아합니다.”_강석호
보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연구는 커튼을 그린 시리즈에서도 드러난다. 주로 바깥이 내다보이는 창문에 드리워지는 커튼은 그 너머의 시선을 차단하기도 하지만 바깥 풍경을 대체하여 눈과 마주하는 꾸밈없는 막이다. 화가가 응시하는 커튼의 표면은 캔버스의 순수한 색과 무늬, 천의 질감과 수평선을 이루며 ‘그림’ 그 자체로 전이된다. 이미지를 뚫고 나와 메세지를 웅변하지 않는 고요한 사물은 궁극적으로 작가와 그림을 마주한 채 대면하고 있는 화면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게 하는 ‘보는 행위’에 대한 순수한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응시의 구조는, 두 사람의 눈을 클로즈업하여 그린 ‘커플 시리즈’에서는 이미지가 관객을 바라보며 되묻고 화답하는 관계에 이른다. 이 외에도 미디어에 노출된 정치인이나 운동 선수들의 몸짓을 흑백의 톤으로 포착한 ‘제스처’, 피부색과 질감에 집중한 ‘누드’ 시리즈, 그리고 정지된 사물을 무한한 시공간에 대한 정물화 연구, 큐브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강석호의 대표적인 회화 시리즈들은 회화 고유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시도되었다.
전시의 제목 "오르는 해는 깊고 내리는 해는 멀다"는 2012년경 개인전의 리플렛에 실린 강석호의 수필, 『두 번째 산행』[3]의 부제이다. 매일 오르내리는 남산 등산로, 흙을 가지런히 쓸어 놓은 빗질 자국과 소나무 숲 사이의 빛과 노을의 색이 스쳐가는 풍경에 대한 묘사는 결과적으로 강석호의 회화에 관한 서술과 다르지 않다. 강석호가 일상을 바라보고 살아갔던 태도가 결국 그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미적 특질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작가로서의 일상을 담은 그의 글들은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터전이 된다.[4]
작가 소개
강석호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얀 디베츠(Jan dibbets, b. 1941-)에게 회화를 수학하였다. 2000년 스위스 바젤의 UBS 아트 어워드를 수상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4년 석남미술상(서울, 한국)을 수상했고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작가로 선정되었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인사미술공간, 금호미술관,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등에서 16회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2021년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였다. 진지한 화가일 뿐 아니라 디자인 가구 수집가이자 전시기획자의 면모도 가지고 있었던 그는 2008년 금호미술관의 《유토피아, 이상에서 현실로》와 아트스페이스3의 《이것을 보는 사람도 그것을 생각한다》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일상과 예술을 따로 떼어 놓지 않았던 그는 회화, 독서, 음악감상, 산행과 낚시를 주제로 동료작가들과 함께 교류하는 모임들을 이끌었으며 2021년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작고하였다. 2018년에서 2021년까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작고 1주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첫 회고전, 《강석호: 3분의 행복》(2022-2023)이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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