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뉴욕 아트위크를 가다]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 전시와 책 출간 기념
9일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패널 토크'
책의 저자인 정연심 교수, 정도련·안휘경 큐레이터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 이우환 작가의 50년 회고
[2025 뉴욕 아트위크를 가다]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 전시와 책 출간 기념
9일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패널 토크'
책의 저자인 정연심 교수, 정도련·안휘경 큐레이터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 이우환 작가의 50년 회고
미술평론가 앤드루 러세스의 진행으로 무대에 오른 이우환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네 명의 화가 중 유일한 생존 작가. 그는 박서보, 김창열 선생과의 인연을 차분히 회상했다.
“박서보 선생을 처음 만난 건 (내가 도쿄에 체류하고 있던) 1968년 도쿄에서였어요. 3년 뒤 파리 비엔날레에 가면서 김창열 선생을 만났죠. 말도 안 통하고,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나를 몽땅 책임지고 동행해 줬어요. 김창열 선생은 문학청년이었어요. 두 분 다 스무 살이 넘어 만났지만, 한국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때였기 때문에 서로 간에 대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인연이 점점 넓어지고 진해져 오래 이어졌죠. 단색화가 갑자기 나온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미 1960~1970년대 일찍이 박서보, 김창열, 김환기, 정상화 선생 등이 모두 해외에서 세계 미술의 흐름을 예리하게 보고 느끼고 있었으니까요.”
한국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살다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간 이우환 작가는 1971년 파리 비엔날레를 계기로 유럽에 발을 디딘 뒤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살았다. 10년 넘게 열심히 했어도 ‘아시아틱, 자포니즘, 코리안’이라는 수식어로 유럽 주류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일본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할 땐 ‘조센징’이라는 비속어로 침입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고.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채 계속 떠도는 마이너리티의 삶이 어쩌면 창작의 기반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동료와 선배들도 비슷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터득한 걸 보면 그것이 ‘반도의 기질’인가 싶기도 합니다. 40년을 해오다 보니 지금은 국적이나 선입견을 제외하고 작품 자체로 봐주는 비평이 많습니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힘이 커진 결과일 테니 감사한 일이죠. 함께 치열한 생각을 나눈 선배들이 계셨기에 그런 과정을 버텨낼 수 있었고요.”
이 책의 출간과 전시 프로젝트는 2021년 파리에서 유품을 정리하던 김창열 작가의 차남 오안 김에서 시작됐다. 그는 박서보 선생에게서 온 편지 한 통을 뉴욕의 티나킴갤러리에 건넸고, 알 수 없는 한자어가 뒤섞인 편지를 받은 티나 킴이 정연심 교수에게 해독을 의뢰했다. 정 교수는 당시 투병 중이던 박서보 선생을 찾아가 서신들을 함께 열람하고 대화했다. 그 대화는 박서보와 이우환과의 편지, 이우환과 김환기의 편지 등까지 이어져 대서사가 펼쳐졌다.
정 교수는 “4년간 마치 꼼꼼한 뜨개질을 하거나 퍼즐을 맞춰가듯 작업했는데, 한국 미술사에 알려지지 않은 귀중한 이야기들이 하나씩 드러났다”며 “특히 박서보 선생은 다른 작가들의 전시 기록과 편지까지 모든 역사를 자세하고 꼼꼼하게 기록해 놔 모두를 놀라게 했고, 작고 직전까지 이 프로젝트를 함께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스캔으로 복원된 서신들에는 작가마다의 필체가 인상적이다.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개성이 다르다. 김창열의 필체는 그의 그림 속 정돈된 서예적 스타일과 전혀 다르게 어딘가 수수께끼를 숨겨 놓은 듯 자유롭고 때론 유머가 넘친다. 화풍이 달라진 1960년대와 1970~1980년대의 필체가 다른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에 비해 박서보의 필체는 힘이 넘치고 반듯해 그의 묘법 연작의 형태와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뉴욕=김보라 기자
—Bora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