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ada Amer: Paravent Girls

티나킴 갤러리는 2023년 10월 26일부터 12월 9일까지 가다 아메르(Ghada Amer, b. 1963)의 개인전 《Paravent Girls_파라벤트 걸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뉴욕 관객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는 동명의 브론즈 조각 시리즈는 2022년 Mucem 미술관(프랑스 마르세유)이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을 위해 제작되었다. 2020년부터 3년에 걸쳐 제작된 Paravent Girls는, 17세기에 이민자들의 보호소이자 피난처로 지어진 마르세유의 라 비에유-샤리테(La Vieille-Charité)의 원형 예배당에서 최초로 전시되었다.

가다 아메르는 이집트 카이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수학하였고, 1996년부터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작가이다. 그녀는 ‘이방인’과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기존의 서구-남성-중심의 미학적 전통이 용인한 관습과는 다른 독자적인 실천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그녀는 순수예술에 가려져 있던 자수와 세라믹 등의 공예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정치와 종교 아래 억압되어 있던 여성의 행위주체성과 그 지위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메르의 작품은 종종 포르노 잡지에서 발췌한 여성의 나체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포르노에서 여성은 많은 경우 익명으로 존재하며, 남성의 쾌락을 위한 도구로 비춰진다. 그러나 Paravent Girls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Suzy, Jennifer, Barbara, Amélie와 같은, 구체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서 아메르는 포르노에서 타자로 물러나 있던 여성이 주체로 호명되는 순간을 지시하는 동시에, 포르노적 이미지가 남성이 아닌 여성의 환희와 황홀, 그리고 해방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안과 바깥으로 접힌, 청동 조각의 위아래 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Paravent Girls의 원형은 종이 상자로부터 비롯되었다. 접히고 펼쳐지고, 변형되고 또 폐기될 수 있는 종이상자의 불완전함과 가변성에 이끌린 작가는 뉴욕 길거리에서 찾은 상자를 작품의 캔버스로 선택했다. 아메르는 포르노 잡지에서 빌려온 여성의 모습을 잉크로 그리고 그 선을 따라 점토를 붙인다. 점토를 늘리고 잘라내며, 비비고 주무르는 등의 과정을 통해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눈썹, 도톰한 입술과 눈동자, 심지어 날카롭게 떨어지는 잉크 방울에 이르기까지, 인물의 모든 표정을 손으로 쓰다듬는다. 이렇게 점토로 다시 만들어진 원본은 대한민국의 국보인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을 복원한 한국의 주물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청동 조각으로 완성되었다.

한편, 칸막이 또는 병풍으로 번역될 수 있는 ‘paravent’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영화와 같은 대중 매체에서 은밀한 유혹이나 사생활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자주 등장한다. 아메르는 브론즈 조각을 하나의 스크린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에 얽힌 시선과 권력에 관한 주제를 드러내는 한편, 평면 작업의 정면성을 벗어나 자율적으로 직립하고 있는 조각의 차원에서 관람객과의 상호적인 시선 교환을 요청한다.

차갑고 딱딱한 표면을 지닌 아메르의 조각은 촉각성과 유연함을 내포한다. Paravent Girls는 여성의 나체 이미지와 결부된 수동성을 전복하며,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모든 여성을 기념하는 작가의 헌사이다.